비문증 Myodesopsia (2025)

〈비문증〉은 시간의 흐름 속에서 사회적으로 점차 희미해지는 존재들을 시각적으로 구현하는 미디어아트 작품이다. 작품 제목인 ‘비문증’(飛蚊症, Myodesopsia)은 시야 속을 부유하는 흐릿한 점이나 실 같은 형상을 의미하는 의학적 용어로, 노인과 ‘ELIZA’의 존재를 은유한다.
콜라텍(Colatec)은 1990년대 후반부터 한국에 등장한 노인 전용 댄스홀로, ‘코카콜라(Coke)’*와 ‘디스코텍(Discotheque)’의 합성어에서 유래했다. 빠른 산업화와 도시화로 공동체 문화가 해체되고, 고령화가 급격히 진행되면서 한국 사회의 노인들은 점점 더 사회적 고립을 경험하게 되었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콜라텍은 노인들이 서로 교류하고 신체 활동을 하며 유대감을 형성할 수 있는 대안적 공간으로 자리매김한다.
그러나 한국 사회에서 노인의 욕망은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며, 특히 신체적 표현과 즐거움을 추구하는 행위는 부정적인 시선에 부딪힌다. 이는 유교적 가치관이 깊이 뿌리내린 한국에서 노인은 가족을 위해 희생하고 단정한 삶을 살아야 한다는 전통적 규범이 강하게 작용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회적 인식 속에서, 콜라텍은 단순한 댄스홀이 아니라 노인들의 사회적 욕구가 억압되고, 그들이 비가시적인 존재로 남게 되는 구조적 현실을 반영하는 공간이기도 하다. 노인의 욕망이 곧 ‘수치’로 간주되는 사회에서, 콜라텍은 뒷골목이나 건물 지하 등 눈에 띄지 않는 곳에 숨어 있어야 하는 공간이 되어버린 것이다.
〈비문증〉은 콜라텍을 단순히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그 공간을 둘러싼 사회적 시선을 성찰하는 작품이다. 전시 공간은 문이 달린 구조로, 문밖과 세 면의 프로젝션으로 이루어진 내부로 나뉜다. 관객이 문을 열고 들어서면, 문밖에서 들리던 경쾌한 콜라텍 음악은 점점 멀어지고, 내부는 불안정한 전자음으로 가득 찬다. 익숙했던 소리가 사라진 공간에서, 관객은 점차 낯선 감각과 마주하게 된다.
영상 속에는 망해버린 콜라텍에서 마지막까지 남아 춤추는 두사람의 모습이 보여진다. 두 사람이 춤을 출수록 공간은 점점 일그러지고 왜곡된다. 그 안에서 관객은 움직임을 감지하는 모션 센서를 통해, 점점 흐려지며 부유하는 존재로 변한다. 이는 노인의 고독과 소외감에서 오는 불편함을 관객이 직접 경험하게 하는 장치이다. 이 후, 관객은 1960년대 탄생한 나이든 챗봇 ELIZA와 현대의 ChatGPT가 나누는 실시간 대화를 보게 된다. 서로 다른 시대에 탄생한 이들의 대화는 정상적인 소통이 아닌, 서로의 질문을 반복하는 무의미한 순환에 불과하다. 이는 젊은 작가가 노인의 고독과 외로움을 이야기하려 하지만, 그것이 지극히 피상적일 수밖에 없는 아이러니를 나타낸다. 결국,〈비문증〉은 우리가 ‘보이지 않는 존재들’을 어떻게 바라보는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